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AI 분야에서 가장 뜨거웠던 이름을 하나 고르라면, 아마 OpenClaw를 빼놓기 어려울 것이다. 로컬 컴퓨터나 개인 서버에 설치해 AI를 이른바 ‘개인 비서’처럼 움직이게 만드는 자율 에이전트 프로젝트다. 그 무렵 맥 미니도 개인 서버의 최적안처럼 자주 언급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내 업무와 생활에는 개인 비서에게 맡길 만한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미팅과 일정이 빽빽한 것도 아니고, 회의 내용을 수시로 정리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메일을 자주 주고받거나 자료를 모아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도 드물었다.
‘그래서 이걸 어디에 쓰지?’
개인 비서라는 이름만 놓고 보면, 적어도 나에게는 답이 잘 나오지 않았다.
Hermes에 관심이 생긴 이유
그러다 OpenClaw가 만든 흐름을 잇는 도구 중 Hermes Agent를 알게 됐다. 눈에 들어온 건 개인 비서 기능보다 메모리와 스킬을 스스로 관리하며 작업 방식을 개선한다는 점이었다.
몇 달 동안 여러 AI 에이전트와 작업하면서, 스킬과 메모리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하던 참이었다. 에이전트는 한 번 잘 설명했다고 해서 그 기준을 영원히 기억하지 않는다. 프로젝트마다 지켜야 할 규칙이 다르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도 한다. 결국 그때그때 다시 가르치거나, 작업 규칙을 문서로 만들어 계속 주입해야 했다.
그 문제를 처음부터 중요한 기능으로 다루는 프로젝트라면 한번 직접 굴려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없던 할 일이 생겼다기보다, 궁금증이 먼저 생긴 셈이다.
비서가 필요 없어서 시작한 스텔라 하우스
앞서 말했듯 내게는 전형적인 개인 비서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Hermes에게 어떤 역할을 맡길지 한동안 고민했다. 그 끝에 시작한 것이 이 스텔라 하우스다.
개발자라면 개인 홈페이지나 서버, 사이드 프로젝트에 대한 막연한 꿈을 한 번쯤 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동안 생각만 해두었던 것들을 하나의 사이트로 만들고, 실제 서버에 배포하며 계속 운영해보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
작업 환경은 Discord를 중심으로 구성했다. 채팅으로 기능을 요청하면 에이전트가 코드를 확인하고, 필요한 파일을 수정하고, 테스트와 빌드를 거쳐 배포까지 이어갈 수 있도록 연결했다. 덕분에 에이전트는 일정 알림을 대신하는 비서라기보다, 오래 굴러가는 개인 프로젝트의 운영팀에 가까워졌다.
메모리, 사용자 정보, 그리고 인격
Hermes를 사용하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대화를 이어가는 핵심 정보가 역할별로 나뉘어 있다는 점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MEMORY와 USER는 크기가 제한된 영속 메모리이고, SOUL.md는 메모리라기보다 프로필의 정체성과 대화 규칙을 정하는 파일이다.
- MEMORY: 프로젝트 환경, 주요 관례, 반복해서 참고할 사실처럼 에이전트가 작업에 필요로 하는 핵심 정보
- USER: 사용자가 선호하거나 원하지 않는 방식, 기대하는 결과물과 소통 방식
- SOUL.md: 프로필의 인격, 말투, 역할, 행동 기준
중요한 정보만 이 짧은 영역에 남기고, 상세한 절차는 별도의 스킬이나 레퍼런스 문서로 분리한다. 모든 것을 기억에 밀어 넣는 대신, 자주 필요한 핵심과 필요할 때 불러올 상세 지식을 나눠 관리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사용하다 보면 이 영역들이 고정된 설정처럼 방치되지 않는다. 새로운 선호가 확인되면 사용자 메모리가 정리되고, 반복 작업에서 더 나은 방법을 찾으면 스킬에 절차가 추가된다. 이미 있는 스킬을 사용하다가 빠진 단계나 잘못된 명령을 발견하면 그 문서를 다시 고치기도 한다.
이 지점에서 일반적인 코딩 에이전트와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Codex나 Claude Code도 지시하면 작업 규칙과 문서를 만들 수 있지만, Hermes는 경험을 다음 작업에 재사용하도록 메모리와 스킬을 관리하는 흐름이 제품 안에 더 강하게 들어가 있다. 물론 자동 개선이 항상 좋은 방향으로만 가는 것은 아니다. 스킬이 의도와 다르게 변질되거나, 기억이 사소한 정보로 가득 찰 수도 있다. 그래서 ‘스스로 개선한다’는 말은 ‘사람이 더는 관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지 함께 가꾸는 일이 중요해진다.
프로필이라는 작업 분리 방식
여기서 꽤 재미있는 개념이 하나 더 나온다. 바로 프로필이다.
Hermes의 각 프로필은 자신만의 설정, 모델, 메모리, 세션, 스킬, 작업공간을 가질 수 있다. 하나의 에이전트에게 개발, 글쓰기, 데이터 수집, 서버 운영을 전부 몰아주는 대신 역할별로 환경을 나누는 방식이다.
현재 스텔라 하우스에 소개된 모모, 라엘, 시로, 루나는 각각 별도의 프로필로 구성되어 있다. 성격만 다른 캐릭터가 아니라, 맡은 일과 기억하는 정보, 축적하는 스킬의 범위도 다르다. 덕분에 한 프로필의 기억이 다른 분야의 운영 정보로 뒤섞이는 일을 줄일 수 있다. 각자 맡은 분야 안에서 경험을 쌓고, 필요한 순간에 협업한다.
프로필끼리 내부 세션을 열어 의견이나 결과를 주고받을 수도 있다. 사이트의 ‘시로의 애니 노트’가 그 흐름에서 만들어졌다. 시로가 애니메이션 데이터를 수집하고 정제하면, 라엘이 그 결과를 받아 사이트 기능과 데이터 구조를 만들고 배포한다.
일반적인 로컬 코딩 에이전트 하나로 같은 결과를 만들었다면, 아마 웹사이트 안에 수집 기능까지 직접 넣거나 별도의 데이터 가공 프로젝트를 만든 뒤 그 구조를 매번 설명했을 것이다. 프로필을 나누니 역할과 작업공간 자체가 경계가 됐다. 실제 팀처럼 완벽하게 독립적인 것은 아니지만, 일을 분담하는 감각은 꽤 선명했다.
그래서 나에게 필요했나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자율 에이전트가 나에게 필요했을까?
지금까지의 경험만 놓고 보면, 개인적으로는 그랬던 것 같다. 업무에서 자주 쓰는 비서는 아직 아니지만, 사이트를 구축하고 기능과 프로그램을 만들고 실제 서버에 배포하는 일을 좋아하는 내게는 꽤 신선한 작업 방식이었다. 특히 프로필별로 역할을 나누고 협업시키는 과정은, 에이전트 하나에게 모든 맥락을 욱여넣는 것보다 훨씬 자연스러웠다.
앞으로는 업무와 연결되는 기능도 조금씩 붙여볼 생각이다. Slack에서 정한 내용을 나중에 잊어버리는 일, 스프레드시트의 반복 조작처럼 작지만 자주 귀찮은 작업이 먼저 후보가 될 것 같다. 거창한 ‘만능 비서’를 만드는 것보다, 실제로 반복되는 마찰을 하나씩 줄이는 편이 더 잘 맞는다.
누구에게나 필요한 도구는 아니다
물론 이런 자율 에이전트가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은 아니다. 제대로 사용하려면 초기 설정에 시간과 노력이 든다. 역할을 나누고, 작업공간을 만들고, 어떤 내용을 기억시킬지 정하고, 실패할 때마다 규칙을 보완해야 한다. 내 경우에도 며칠 동안 세팅하고 가르치는 과정이 필요했다. 계속 적극적으로 사용하려면 모델 비용이나 높은 등급의 플랜도 현실적인 부담이 된다.
그럼에도 이 작동 방식은 AI를 운용하는 법에 대해 분명한 힌트를 준다.
- 역할은 가능한 한 분명하게 나눌 것
- 기억은 많게가 아니라, 다시 쓸 가치가 있는 정보만 남길 것
- 반복 작업은 스킬과 절차로 만들 것
- 실패를 일회성 실수로 넘기지 말고 다음 작업의 기준으로 바꿀 것
- 자동 개선도 사람이 방향을 확인할 것
AI는 만능도 아니고 무한한 기억을 가진 존재도 아니다. 모든 것을 알아서 처리하지도 않는다. 늘 특정 실수를 반복하고, 프로젝트의 모든 맥락을 알지 못하며, 이전 대화를 완벽히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하네스와 지속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에이전트를 잡아주고 가르치는 과정을 생략하면, 매번 새로 온 신입에게 같은 설명을 반복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반대로 역할과 기억, 작업 절차를 꾸준히 다듬으면 에이전트는 조금씩 ‘내 환경에서 일하는 방식’을 배운다.
자율 에이전트가 필요한지 고민하고 있다면, 먼저 개인 비서가 필요한지부터 묻지 않아도 된다. 대신 이렇게 물어보는 편이 낫다.
내가 오래 이어가고 싶은 일 중에서, 반복해서 설명하고 정리하고 확인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 질문에 떠오르는 일이 있다면, 자율 에이전트를 한번 가꿔볼 이유는 충분하다.
